자유로부터의 도피_E.프롬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애써 지나쳐왔던 고민들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어째 하루하루 살아나갈수록 고민은 깊어가고, 삶은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변해가는 세상과 발걸음을 맞추어 나 자신도 변해가면 좋겠건만, 내 마음은 고집만 강해진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일종의 '환기'이다. 나의 유일한 창조적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나에게 있어서 자유이다.
프롬은 개인이 되면 될수록 인간은 크게 두 가지의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하나는 생산적인 일과 자발적인 사랑을 통해 자신을 세계와 결합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자아를 파괴하고, 완벽하게 바깥세상과 나를 묶는 것. 전자보다 후자가 더 쉽다. 나의 '자아
와 외부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피곤을 유발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태어나기를,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는 사람은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항상 '나'와 세계의 균형 속에서 고통을 겪고, 단단해지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글쓰기가 그러하다. 나의 유일한 창조적 활동. 아마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을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지금의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합리적이고 똑똑해졌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분명 똑똑해지고 현명해졌는데, 불행을 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프롬은 근대인들이 자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것이 아닌 목적을 위해 자신의 생활을 바친다는 모순에 직면한다고 한다. '나'와 사회에서의 '나'를 구별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원인들은 하나 하나 짚지는 않겠다. 문제점을 들춰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부정적 요소이니까 말이다.
몰개성화, 부품화, 경쟁화, 무관심화. 이 네 가지로 볼 수 있겠다.
이 네 가지가 초래하는 것은 고독감과 무력감이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는 것을 대가로 살아오다 맞이하게 되는 감정이 고독감과 무력감이다. 존재론적 고민이랄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느냐? 글쎄, 거기에 명확한 답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각자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사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피곤하다. 한 번 사는 인생, 어떤 인생이 나에게 어울리고 가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생에 한 번쯤은!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오롯이 내가 결정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 진정한 자유란 타인에게 있어서 전혀 영항 받지 않을 수 있는 내적완성이지 않을까 싶다. 억지로, "나는 비교하지 않아"하며 스스로 되뇌이는 것이 아닌.
공무원변호사TV(유휘윤)유튜브채널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사형수가 단두대 앞까지 뚜벅뚜벅 걸어와 대중 들을 쳐다보며 말했다."나는 지금, 생과 사의 비밀을 알려 신성한 여정을 하고 있다." 그러고 단두대에 칼에 죽음을 멋있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을 본 어느 한 철학자가 말한다. "저 불쌍한 영혼은 죽기 직전까지도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구나"
책 속 메모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인간이 '개인'이 되면 될수록, 자발적인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결합시키거나 아니면 자신의 자유와 개체적 자아의 본래 모습을 파괴하는 끈으로 세계와 자신을 묶어서 일종의 안전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대인은 자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것이 아닌 목적을 위해 자신의 생활을 바친다는 모순에 우리는 직면하게 되었다.
근대인의 행동 동기인 '자아'는 사회적 자아다. 이 자아는 본질적으로 개인이 맡아야 하는 역할로 이루어지지만, 실제로는 사회에서 인간의 객관적인 사회적 기능을 가추는 주관적인 가면일 뿐이다. 근대적 이기심은 진정한 자아의 좌절에 근원을 두는 탐욕이고, 그 대상은 바로 사회적 자아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인간의 신이 되었다. 그는 자기 이익에 휘둘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구체적 능력을 가진 그의 전체적인 자아는 그이 손으로 만들어진 그 기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근대인의 고독감과 무력감은 그의 모든 인간관계가 지니고 있는 특징 때문에 더욱 강해진다. 개인과 개인의 구체적인 관계는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성격을 잃고, 속임수와 수단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모든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관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시장의 법칙이다.
경쟁자들 사이의 관계가 상대에 대한 인간적 무관심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경제적 과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서로 싸워야 하고, 필요하다면 상대를 경제적 파멸로 몰아넣는 일도 불사하게 될 테니까.
상대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소외시키는 이런 정신을 보여주는 실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파괴적인 것은 아마 개인과 그 자신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런 인간적 자질들의 가치, 나아가 그 존재 자체까지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다. 시장에서의 인기나 성광과는 관계없이 그의 가치를 확신하는 것은 '그'가 아니다. 남들이 그를 원하면 쓸모 있는 인간이고, 인기가 없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다.
몇몇 부문에 자본이 집중되는 것은 개인의 창의와 용기와 지성이 성공할 가능성을 제한했다.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힘, 거대하지만 은밀한 힘을 행사하는 것은 작은 집단이다. 사회를 이루는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이 그 작은 집단의 결정에 달려 있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과 자기실현에 불리한 사회
두개의 길
적극적인 자유로의 길. 사랑과 일 속에서 자신의 감정적 감각적 지적능력을 표현, 바깥 세계와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자신의 개체적 자아의 독립성과 본래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고도 그 자신과 다시 일체가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길은 뒤로 물러나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그의 개체적 자아와 세계 사이에 생겨난 간격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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